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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칼럼 /조미연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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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아니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입니다.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정부가 정한 동정과 시혜의 날을 거부하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나가는 날로서 4월 20일을 맞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매년 4월 20일이면 장애·인권·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이 꾸려집니다.
장애인복지법 제43조에 의하면, ‘장애인의 날’은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우리나라는 1981년 유엔 총회의 ‘세계 장애인의 해’ 선포에 대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그해 4월 20일 ‘제1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이후 ‘장애인의 날’은 당시 정부의 법정기념일 축소 방침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받지 못하다가 1989년 12월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1991년부터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어 올해로 44회에 이르고 있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가 있던 2001년부터 23회째입니다.
날이 날이어서 일까 매년 4월 20일 즈음이면, 저도 모르게 ‘장애인 권리의 현주소’에 대해 더 곰곰이 돌아보게 됩니다. 탈시설, 고용, 교육, 이동권 등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달라고 목 놓아 외쳤던 장애인단체의 지하철행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공권력의 과잉대응과 소통거부는 유엔에서의 권고·우려가 무색하게 요지부동합니다.
차별적 현실·사회구조를 뒤로하고 ‘장애인의 날’에는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장애 극복상’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장애와 질병을 구분하지 못한 표현이거나, 장애를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이 머물러있는 자리가 참 애통합니다.
여러 사건·사고가 교차하는 날들이 이어져온 가운데 저의 우려는 최근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안’ 입법예고에서 극대화되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22년 6월 21일, 서울시의회에서 「탈시설조례」 가 통과된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탈시설 당사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성과임은 물론이고 5월의 어느 날 밤 급하게나마 장애인단체 입장을 반영한 조례안을 정리해보려고 애썼던 시간에 위안이 되는 소식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발걸음으로 나아갔던 서울시 탈시설조례에 대한 ‘폐지안’이라니.... 주민조례로 청구된 이 폐지안의 청구이유는 탈시설조례가 오히려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현재 서울시장은 ‘탈시설 선택권’을 이야기하며 탈시설지원에 관련된 예산을 삭감하거나 거주시설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연이어 내놓고,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과반수가 넘는 의원의 입장 또한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올해로 20살을 맞이한 공감이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만든 구성원 카드 뉴스 중에 제 마음을 울리는 대목이 있어 나누려고 합니다.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실제로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권리 보장이 국가의 의지에 달린 것임에도 너무나 쉽게 국가의 재정에 달린 것으로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중략) 한 사람을 나눌 수 없듯이 인권 역시 불가분합니다...’
비단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뿐 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현실은 장애인의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 마치 장애인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보장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책임자들은 국가의 의지에 달린 일을 재정에 굴레를 씌워 인권을 나눌 수 있다는 듯, 그래도 된다는 듯 당당하기도 합니다. 비장애인에게는 투쟁의 대상이 아닌 ‘이동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최저임금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 등이 장애인에게도 하루속히 ‘권리’로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어지는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켜켜이 쌓여가는 우려와 의구심 속에 마음 한켠이 서늘한 요즘이지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며 20년을 걸어온 공감의 활동, 더 지난한 세월을 지나온 장애인권운동을 떠올리며 2024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앞에 두고 함께 다짐하려 합니다. 장애인의 그 당연한 권리 보장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겠습니다.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