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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디지털전도사’ 강민구 고법부장판사, “한국 법조, 생성형 AI 기술 신속히 도입해야”

법률신문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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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 활용하면 법원 신속한 재판·판결 가능
대한민국 전자소송 시스템 이미 세계 최고 수준
한국형 AI 키우려면 ‘미국형’ AI 규제 입법 바람직

"법원이 판결 작성 도우미 인공지능(AI)을 도입한다면 신속한 재판·판결은 자연스레 달성될 겁니다. 판사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면서도 판결문을 일주일에 3건 이상 쓸 수 있는 시스템이 AI로 인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IT 베테랑', '디지털 전도사'로 꼽히는 강민구(65·사법연수원 14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신속한 재판을 위한 방책으로 AI를 제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법원이 정책적 결단을 내려 생성형 AI 기술을 신속히 법관 실무에 도입해야 한다. 국민의 예산을 아끼고 법관 수를 급격히 늘리지 않으면서 판결을 빠르게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법원의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이 개통한다. 법원에서 시스템과 연동해 내부용 AI를 개발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내년 1월 말 정년퇴임을 앞둔 강 부장판사는 서울고법 형사부 재정신청부에서 법관으로서의 마지막 임기를 보내고 있다. 1988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35년을 법관으로 산 그는 '법원 정보화 역사'의 산 증인이다. 사법부의 굵직굵직한 디지털화 사업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찾기 어렵다. 1990년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포털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자소송제도 마련에 관여했다. 2016년에는 사법정보화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내년 개통 예정인 차세대 사법정보시스템 방향을 다졌다. 법률신문은 26일 서초동 서울고법청사에서 그를 만나 AI와 한국 법조의 미래, 법관으로서 지나온 삶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사법정보화와 정보기술(IT)을 잘 활용하면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품질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다는 것, 부장님의 지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원의 정보화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재판 지연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여전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A. 컴퓨터 활용 이전의 사건들은 사건의 양상이 간단했으나 IT 기술과 법률정보 시스템 발전 등으로 사건이 점차 복잡해지고 양이 폭증한 것이 신속한 재판의 가장 큰 저해 요인이다. 사실 한국 법원의 사건 처리 속도는 일본, 미국, 유럽과 비교해 빠른 편이지만 국민은 종전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법관 사회에 열심히 일할 동기 부여가 약해진 점, 사회 전반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점도 재판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법관의 수 자체도 적은 편이다. 중국은 판사가 15만 명 정도로, 인구 9000명당 1명 꼴이다. 우리나라는 3000여 명으로, 인구 1만 6000명당 판사 1명이다. 판례와 법조문을 찾아 판결문 초안을 작성해주는 '판결 도우미 AI'를 도입하면 판결문 쓰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 판사들은 판결의 결론을 생각하는 데 10~20%의 에너지를 쓰고 판결 이유를 적는 데에 70~80%의 에너지를 썼다. 생성형 AI를 도입한다면 그 반대가 된다. 이유를 적는 데 10~20%의 에너지만 쓰고 결론에 나머지 70~80%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된다. 판결의 품질이 그만큼 향상될 거다. 판사 수를 늘리지 않고도, 판사들이 워라밸을 포기하지 않고도 업무보조 AI 시스템만으로 신속한 재판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Q. 우리 사법부의 정보화 수준은 사법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가.

A. 한국 사법정보화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이라 자부한다. 최종 사용자인 법관이 시스템 구축에 강력하게 관여해 사용자 지향적인 전문 시스템을 구축한 덕이다. 특히 전자소송이 보편화된 민사소송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은행이 2020년까지 매년 발표하던 '기업환경평가보고서(Doing Business Report)'에서 한국은 민사 재판이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약이행 강제력 지표' 1위를 수년간 유지한 바 있다.

Q. 최근 챗GPT, 구글의 '바드(BARD)' 등 생성형 AI가 전세계를 흔들고 있다. 리걸테크 업계에서도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해 변호사와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법률 AI 개발에 한창이다.

A. 한국형 법률 AI가 성공하려면 법원 클라우드 서버에 묻혀있는 수백만 건의 하급심 판결문, 공시되지 않은 일부 대법원 판결문이 공개돼야 한다. 지금도 판결문이 비실명 처리돼 제한적으로 공개되고는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AI 산업 증진을 위해 판결문의 전면적·실시간 공개, 익명화 최소 원칙이 입법을 통해 도입돼야 한다. 이게 안 되면 한국 리걸테크 산업은 꽃 못 피운다.

Q. 시중에 나온 생성형 AI 서비스들을 직접 사용해본 후기가 궁금하다.

A. 현재 개인이 무상 사용 가능한 것은 챗GPT 3.5버전,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BING), 구글의 바드 등이다. 군소업체 생성형 AI도 있다. 테슬라의 X.AI, 아마존, 메타(페이스북)등도 열심히 하고 있다. 국내는 네이버, 카카오, LG, KT, SKT 등에서 각자 거대언어모델(LLM)을 가지고 추격 중이다.
시중에 나온 생성형 AI 서비스 중 현재는 바드가 비교 우위에 서 있다. '환각증세(거짓 답변)'가 적고 한글 처리가 자연스럽게 잘 되고 있다. 사용자가 입력하는 상황에 따른 소장 샘플 등도 막힘없이 작성한다. 곧 바드가 생성형 AI의 절대 강자가 될 거다. 구글은 수십 년간 축적한 전세계 검색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바드는 이걸 모두 학습 중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공개해온 공공 데이터를 블랙홀처럼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판례, 종합법률정보도 학습하고 있다. '환각증상'도 실시간으로 제거하는 것 같다.
생성형 AI는 크게 '데이터'와 '엔진', 두 자원으로 움직인다. 원재료인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그걸 처리하는 AI 엔진의 중요성도 크다. 엔진은 블랙박스처럼 작동해 그 안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AI를 개발한 사람들도 정확히 모른다. 한국은 데이터 자원 학습, 처리 엔진 두 가지에서 모두 밀리고 있다. 이미 구글 바드와의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Q. 법조인들은 '천지개벽'이라 할 수 있는 생성형 AI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A. 아직은 다들 재판·송무에 바빠 호기심 차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직접 폰에서 바드를 가동하여 고소장·소장이 자동 작성되는 것을 본다면 그 인식이 많이 변할 것이다. 7월 서울고법·중앙지법, 수원지법에서 법관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게 됐다. 그 이후 많은 인식 변화가 오기를 기대한다. 재야 법조도 거의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 뉴스를 통해 AI 기술에 대해 많이 듣고는 있지만, 아직 그 심각성을 피부로 실감 못하는 실정으로 안다.
각자 스마트폰에 빙, 바드, 챗GPT 세 가지를 속히 설치하는 것부터 촉구하고 있다. 특히 빙은 폰에서 앱을 설치하나, 나머지는 웹사이트 URL을 폰 홈화면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앱 장터에 난립한 GPT 유사앱들은 유료 결제를 강제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Q. AI 시대에도 법률가들은 인간적 면모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IT 감수성'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A. 결국 아무리 디지털 IT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아날로그 내공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IT 감수성은 파워 유저 자세, 구글 알리미 등을 통한 신기술 배우기, 전문가에게 묻고 배우기 등으로 키울 수 있다. 아날로그 내공은 생각근육 육성이 비책이다. 다방면의 독서, 글쓰기, 명상, 각계 전문가와의 대화 유지로 증진된다.

Q. 한국형 AI를 키우려면 AI에 대한 규제 입법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까. AI 규제의 대표적 예로는 '유럽형'과 '미국형'이 있다.
(챗GPT를 개발한 미국 오픈 AI사의 CEO 샘 알트먼은 지난달 "유럽의 AI 규제를 준수하는 것이 어려우면 유럽서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EU의 AI 규제안에는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회사들이 플랫폼 개발에 사용된 모든 저작권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무 등이 포함된다.)
A. 유럽은 인터넷 초창기부터 인터넷 기반 사업에서 완전히 미국에 굴복했다. 인적·물적 자원이 미국에 집중된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은 데이터 주권,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보호, 보안 등을 주제로 규제 일변도로 입법이 전개됐고, 가급적 미국의 독과점 상태를 막으려고 한다.
미국은 산업 차원에서 글로벌 패권을 가진 미국 거대 IT 기업 보호 측면에서 규율 중이다. 양쪽의 시각 차이는 아주 크다.
한국 AI 규제와 입법은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 즉 최소한의 규제를 하되 산업을 진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AI는 강한 규제 중심으로 가면 망할 거라고 본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이스라엘과 함께 LLM 생성 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AI 강국으로 올라설 큰 기회가 온 것이다. 일부 학자들이 자꾸 개인정보 이슈 등을 문제 삼으며 유럽식 AI 규제 모델을 강조하는데 자칫하다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 AI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이 어떻게 규제를 하는지 지켜보고 우리의 방향을 정해도 늦지 않다. 지금도 우리 개인정보보호법은 규제 강도가 너무 세 빅데이터 산업이나 AI 산업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걸 명심해야 한다.

Q. AI의 오판과 편견 등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A
. 아이작 아시모프가 소설 《아이, 로봇》에서 제시한 '로봇 3원칙'을 AI 윤리의 3원칙이자 대줄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 2017년 공표된 아실로마 AI 원칙 등을 접목해 윤리 원칙을 제정해야 한다. 단, AI에 대한 국제적 스탠더드를 마련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본다. 각국의 AI 기술 성숙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윤리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자율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챗GPT 등 생성형 AI들은 성착취, 보이스피싱, 해킹 등 범죄 수법에 대한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하지 않도록 하나 둘 윤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정치 영역에서의 악용이다. 독재정부와 테러리스트들이 독자적으로 생성형 AI를 만들어 인류와 민주주의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 AI로 가짜뉴스를 만들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위험도 크다. 우리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현명한 대책을 만들기를 바란다.

Q. 사법 정보화의 중요성에 대해 눈 뜬 시기는 언제인가. 계기가 궁금하다.
A.
1985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군에 입대해 배치받은 곳이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였다. 그곳에서 중대형 서버 컴퓨터에 연결된 흑백 모니터 단말기로 모든 학사 행정을 처리하며 개인적 호기심으로 코딩을 독학으로 배운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Q. 왜 법관으로 남았나. 법원을 떠나 변호사, 기업인 등 다른 길을 도전하고 싶던 적은 없었나.
A.
친구들이 저더러 30, 40대 중반에 법관을 그만두고 IT 회사에 갔으면 재벌이 됐을 거라 농담삼아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런 제안도 받았다. 그렇지만 판사 일이 너무 좋아서 그 기회를 놓쳤지만 후회는 안 한다. 판결을 내리며 국민 개개인에게 개별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나. 판사 일이 정말 즐겁고 좋았다.

Q.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착한 일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까지 미친다'는 뜻의 글귀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 이 글귀를 매번 강조하시더라. 법관으로서 이 자세를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궁금하다.
A. 평소 정리한 자료는 아낌없이 주위에 나누어 왔다. 재판부 이동 시 항상 후임 재판부를 위한 매뉴얼 작성했고, 풍부한 디지털 자료를 넘겨주었다. 2017년 1월 부산지방법원장직을 퇴임하며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를 주제로 한 강연 영상은 유튜브에서 136만 명이 봤다. 최근에는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며 '디지로그 명심보감' 시리즈를 3~10분 이내의 영상 30여 편을 올렸다. 국민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면 좋겠다.

Q. 사법부에 35년간 머무르며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무엇인가.
A.
난제 사건들을 후임 재판부에 미루지 않고 판결한 것들이 가장 큰 보람이다. 예술법정을 도입한 일, 사법정보화에 기여한 것, 모교 서울법대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러운 창의적 동문상 받은 것 등이 스친다. 35년간 1만156건의 판결문을 남겼기에 원 없이 일한 셈이라 큰 여한은 없다. 내년 퇴임을 하면, 좀 더 폭넓게 생활하면서 '디지털 상록수'(디지털 격차해소)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