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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국제법을 평생의 업으로'…백진현 국제해양법재판소장
출처 | 법률신문      등록일 | 2017.11.06

"국제법 전문가 꿈꾸는 법조인 지원·육성정책 절실"

"국제사회의 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로 국익을 위한 일입니다."
이지적인 풍모의 백진현(60)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International Tribunal for the Law of the Sea) 소장에게 무엇이 '국가의 이익'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문현답이었다. 양나라 혜왕이 먼 길을 찾아온 맹자에게 '이로움'에 대해 묻자 맹자가 "왕은 어찌하여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일갈했던 고사가 떠올랐다. 국제사회의 속성을 항상 뺏고 뺏기는 제로섬(Zero-sum) 관계로만 생각했던 좁은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백 소장은 인터뷰 내내 국제법의 이상과 현실을 명쾌한 논리로 설명했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그의 판단력이 세계 3대 재판소로 손꼽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수장으로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3년 간의 소장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 출국을 앞둔 백 소장을 지난달 25일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만났다.


부산에서 태어난 백진현(60) 국제해양법재판소장은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부친은 언론인인 고(故) 백탁기 경향신문 상무이사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느냐'는 질문에 "그저 남들이 하는 만큼 평범하게 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수재였다. 76학번인 백 소장은 김용덕(60·사법연수원 12기) 대법관, 유남석(60·13기)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현(61·17기) 대한변호사협회장과 법대 동기다. 김 대법관, 유 후보자와는 고등학교도 함께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역사적 사건 이면에 숨겨진 국가 간 역학관계, 그리고 왕조의 흥망성쇠를 읽는 게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세계사를 유달리 좋아한 백 소장은 대학시절 사법시험보다 국제정세나 외국문물에 더 큰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서울대 법대 학보인 피데스(Fides)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항상 '더 넓은 세상'으로 진출하는 꿈을 꿨다. 그런 백 소장이 국제법에 매료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쯤 국제법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그때 처음 국제 판례를 접했는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구요. 도도한 세계사적 흐름이 판례 안에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한 역사와 국제관계, 그리고 전공인 법학까지 아우를 수 있었으니 금상첨화였죠. 아무래도 이걸 업(業)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시절 사법시험보다는
국제정세 등에 더 관심

국제법 중에서도 특별히 해양법을 선택한 것은 그의 탁월한 안목 때문이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해양법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특히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상 바다와 관련된 이슈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백 소장은 불모지나 다름 없던 우리나라 해양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학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행히 국비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부담을 덜었다. 그는 1982년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석사과정(LL.M)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만나 평생의 반려자가 된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도 함께 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 컬럼비아 로스쿨에는 저명한 국제법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는 유엔 법률국(UN Legal Department)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국제법과 국제기구에 정통한 오스카 샤흐터(Oscar Schachter, 1915~2003) 교수와 국제인권법의 대가인 루이 행킨(Louis Henkin, 1917~2010) 교수를 은사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어찌 보면 행운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정보검색도구가 없던 시절이라 교수진을 알아보고 간 게 아니었거든요. 무작정 갔는데 쟁쟁한 국제법 권위자들이 있었고, 그 밑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천운(天運)이 따랐다고 봐야지요."
석사를 마칠 무렵 지도교수였던 샤흐터 교수는 백 소장에게 국제법의 본산인 유럽에 가서 학업을 이어나갈 것을 권유했다. 그는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갔다.

美컬럼비아大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大서 박사학위

이후 '해양경계획정'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백 소장은 7년 반 동안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로 지내며 국내 1세대 해양법학자인 고(故)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과 인연을 맺었다. 2009년 박 재판관이 세상을 떠나자 백 교수는 그의 뒤를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ITLOS 재판관이 됐다.

"재판관 선출은 회원국(현재 168개국)이 모두 투표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3분의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는데, 67% 이상 찬성을 얻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군요(웃음)."

2014년 재판관 재선에 성공한 그는 올 10월 2일 ITLOS 소장 선거에 도전해 블라디미르 골리친(Vladimir Golitsyn)에 이어 제8대 소장에 당선했다. 아시아계로서는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전 소장에 이어 두 번째다.

국제재판소의 수장으로서 그는 무엇보다 '중립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TLOS 소장은 제소 사건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재판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전략을 세웁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21명의 재판관을 리드하며 법적 판단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소장이 중립성을 잃으면 의견일치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또 국제기구 구성원으로서 보편적인 인류애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공존공영에 기여하는 것이 국격을 높이고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국익과 국제사회의 이익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한국인들은 믿을 만하구나'라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는다면 자연스레 국격이 올라갑니다. 국제기구 종사자들은 '세계인'으로서 정의와 법치에 기여하는 일에 방점을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박춘호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 ITLOS 재판관에

세련된 국제 매너가 몸에 밴 백 소장이지만 법적 판단을 내릴 때만큼은 철저하게 냉정해진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리없는 전쟁터'에서 감상적인 판단은 치명적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백 소장은 국제법 실력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법 논리를 구성해야 냉엄한 현실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분쟁 당사국은 ITLOS가 객관적인 재판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 신뢰를 배신하지 않으면서, 당사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치밀한 법 논리로 무장해 납득시키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는 재판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 올해 9월 23일 선고한 가나-코트디부아르 해양경계획정 사건을 꼽았다.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아이보리 해안(Ivory coast)에서 최근 거대한 유정(油井)이 발견됐습니다. 그러자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서로 이 수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퉜습니다. 당시 유리한 입장이던 가나는 1950년대부터 유지하던 기존의 해안선이 묵시적 합의에 이르렀다며 변경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코트디부아르는 그러한 경계선은 어부들이 편의상 나눈 것일 뿐 법적 효과가 부여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어요. 저를 포함한 재판부는 일단 기존 경계선의 성격이 임의적이라고 규정하면서 등거리 원칙(Equidistance principle)을 적용해 새로운 경계선을 획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원칙을 적용해 새롭게 경계선을 잡아보니 원래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가나가 만족스러워한 것은 당연했고, 원칙대로 판단한 이상 코트디부아르도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중국의 사드보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논의, 미국 월풀(Whirpool)사의 삼성, LG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신청 등 우리나라의 외교협상력이 도마에 오르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근시안적 처방만 남발하는 정부의 아마추어적 행태를 꼬집는다. 백 소장에게 해결책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강대국은 '국제법 강국'…
최고 법률가를 외교현장에

"영국과 미국 등 외교 선진국들은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들이 외교부에 고용돼 지원업무를 담당합니다. 이들은 통상분쟁 등 법적 판단이 필요한 일만 담당하면서 역량을 키워갑니다. 순환보직으로 부서 내부에 법률전문가를 키우기 힘든 우리 현실과는 달라요. 우리는 다른 나라와의 분쟁에서 지고나면 너무 쉽게 '힘의 논리'에서 밀렸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위 강대국들은 최고의 법률가들을 외교 현장에 배치한 '국제법 강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는 정부가 국제법 전문가를 꿈꾸는 법조인들을 지원하고, 고용하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로스쿨 학생에 대한 조기 지원 필요성도 언급했다.

"국제법 공부는 분명 좁은 길입니다. 로스쿨에 가서 학생들에게 선뜻 '이 길을 따라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송무시장 등에 비하면 시장이 작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제법은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시장논리에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 국제법을 공부하려는 사람을 적극 지원하고, 사기도 북돋아줘야 합니다. 로스쿨에서 뜻있는 학생을 모아 다양한 연수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자연스럽게 외교부 등으로 유입시켜 각종 법률문제를 전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백 소장은 2020년 임기가 만료된다. 그는 소장 임기를 마친 다음에도 ITLOS 재판관으로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법을 평생의 업으로 결정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년 간의 소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ITLOS에 남아 재판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비록 각국의 정치 상황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당장은 국제협력이 도전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에는 거시적 차원에서 각국이 힘을 모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저는 남은 삶을 계속 해양법 분야에 바칠 것입니다."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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