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결과 열기
판례(0) 현행법령(0) 학회논문(0) 법조인명록(0) 법률서식(0) 규정(0) 리포트(0) 법률뉴스(0)
판례디렉토리(0) 연혁법령(0) 판례연구(0) 법률사무소(0) 법원서식(0) 결정(0) 최신법령해설(0) 칼럼(0)
천자평석(0) 포커스법령(0) 법률잡지(0) 법조동향(0) 종합서식(0) 질의응답(0) 사례해설(0) 법학계소식(0)
해외판례(0) 최신제개정(0) 실무논문(0)   해설계약서식(0) 서식(0) 매뉴얼(0) 고시로스쿨(0)
판례속보(0) 입법예고(0) 주석서(0)   해설송무서식(0) 보도기사(0) 세무정보(0) 엔조이로앤비(0)
뉴스속의 판결(0)   온라인주석서(0)   자동국문계약(0) 기타(0)    
    E-Book(0)   자동영문계약(0)      
    사법정책연구총서(0)          
    법률용어(0)          
최근 주요검색어
민법
상법
형법
근로기준법
개인정보보호법
'수분지성(守分至誠)'의 법조선비 정성진 前 법무장관
출처 | 법률신문      등록일 | 2017.09.04

"검찰개혁의 본질은 '검찰=권력'이라는 인식 타파"


수분지성(守分至誠, 분수를 지키며 성심을 다한다). 24년전 인생의 절반을 몸담았던 검찰을 미련없이 떠났을 때에도, 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학 총장에 선임됐을 때에도, 노무현정부 마지막 법무부 장관직을 맡았을 때에도, 정성진(77·사시 2회) 국민대 명예교수는 이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올해로 '희수(喜壽)'를 맞이한 정 전 장관은 여전히 그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난 4월 제6기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되며 법무·검찰과 학계를 넘어 법원까지 진출했다. '꾸준히 고뇌하며 노력하는 자, 그러한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천사의 합창 구절을 기억해 달라며 빙그레 웃었다. 정 전 장관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10평 남짓한 개인 연구실 '청눌재(淸訥齋)'에서 보낸다. 달변가이기보다는 어눌하더라도 맑게 세상을 살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법조인의 착한 교류를 이끄는 따뜻한 '법조 선비'로 남고 싶다는 정 전 장관. 부드럽지만 담대한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충무에 있는 청눌재에서 만났다.


"법조인의 길을 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구사대부속국민학교에 재학 중이던 정 전 장관은 1952년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국 최고득점을 해 주변의 주목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쏟아지는 관심과 시선이 부담스러워 대학에 진학해 대구를 떠날 때까지 늘 마음이 불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제시대 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선친의 스승이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최문한 교수님이었습니다. 제게 서울대 문리대에 가서 영문학이나 독문학을 전공한 후 외국 유학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해 전문가가 되라고 조언해주셨죠. 제가 사실은 인문학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인문학 분야에는 재능이 필요한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법대는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다소 막연하고 지금 생각하면 매우 부끄러운 마음으로 법대에 진학했어요."

"우수한 사람이 많이…"
막연한 생각에 법대 선택

1963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전 장관은 공군법무관을 거쳐 1971년 대구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사시에 응시하려는 결심 자체가 늦어 동기생 중 우수한 분들보다 조금 늦게 합격했습니다. 사시에 합격하고 나서도,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관련된 최종적 판단을 하는 판사보다 수사와 공소제기를 담당하는 검사 업무가 덜 부담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다소 범속(凡俗)한 생각으로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죠."


만 24년을 검사로 일하면서 일선 검찰청은 물론이고 법무부 법무실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법무·검찰 주요보직을 섭렵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이 검사의 이상이자 목표고 보람인데, 그때를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진정으로 '신난다, 보람있다' 이런 생각보다 '힘들었다'는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그때는 '검사라는 게 정말 어렵구나'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수사와 공소 업무가
덜 부담스러워 검사의 길로

그는 금세 청년 검사 시절로 돌아가 생각에 잠겼다. "특수부장과 중수과장을 지내면서 대기업 토지 매입사건, 명성사건 등 굵직한 수사에 참여는 했지만 특별히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서 긍지를 찾고 만족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지만, 요즘 사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고된 생활이었죠. 사건을 기한내에 처리해야하는데 혹시라도 구속기간을 넘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했습니다. 월말이면 미제사건 통계가 나오니까 우리 청에서 미제가 많아도 안되고, 사건처리를 하다가 결재를 못하고 미루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수사 등 검찰 업무외에도 기획 업무가 있으니 제도 개선책도 강구하면서 상사에게 계속해서 보고도 해야 했고…."

벌써 50여년전 이야기인데도 검사들의 생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공익을 위한 보람도 있었지만 규율과 중압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나 상사들이 저를 신임하고 일을 맡기니까 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를 인정해주고 믿어줄 때에는 적성이 맞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기 마련입니다."

YS정부 때 공직자재산공개
계기 인생 2막 열어

그러나 그의 검사 생활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끝을 맺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 때 시작된 공직자 재산공개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으로 막 부임한 정 전 장관은 차관급 재산공개 대상자 125명 중 재산이 가장 많은 공직자로 보도됐다. 유산이 많다는 이유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검사직을 내려놓았다. 할말도 많고 억울할 법도 했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인생의 2막을 여는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그는 곧장 유학길에 올라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과 일본 게이오 법학부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1995년부터 국민대에서 형사법과 경제법을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교수시절 연구활동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 국내 최초로 내사(內査)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내사론'과 '검찰권행사에 있어서 공중의 참여와 통제', '형사절차에 있어서 검사의 의견청취'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 탄탄히 쌓아올린 실무 경험과 법학 이론을 연계한 그의 독창적인 논문은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형사정책학회장과 한국형사법학회장을 역임하고 2003년 3월에는 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학 경영의 CEO인 국민대 총장에까지 올랐다.

美·日 유학 후 대학교수로…
검사출신 첫 총장까지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있다 대학을 가니 '천국' 같았습니다. 원래 제 성향은 조금 자유로운 쪽이어서 너무 사람을 얽매고 구속하는 틀에 잡힌 생활은 맞지 않았나 봅니다. 교수 생활에 아주 적응을 잘했고,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도 했습니다. 실무가로서 학계에 도움이 되고 학계 생활을 열심히 하며 실무에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법학계와 실무계를 잇는 든든한 디딤돌 역할을 한 그는 2002년 제33회 법률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의 생활이 법조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됐다"며 "그때 경험이 개인적으로 더 깊이있는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새 정부의 법무·검찰 개혁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지금 정부내에 대통령 이외에는 국무위원 중 법조인이 없습니다. 법조경력이 없다는 것은 그쪽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다행히 민정수석을 맡은 조국 교수나 박상기 법무장관이 형사법 전공 교수이고, 자문위원 등의 형태로 법무행정에 참여한 경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는 현실을 모르고 이론과 이상에 치우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일종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대되는 부분도 큽니다. 말하자면 이 분들은 법무·검찰 개혁을 하면서 기존에 비판을 받았던 특권 의식 없이 개혁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직은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법조나 검찰의 눈으로 보면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국민들의 요구나 기대에 비춰 아직은 실망할 단계가 아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거센 검찰개혁의 문턱에서 그는 새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현 시대가 요구하는 검찰총장 상(像)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검찰개혁을 특권의식 타파로 정의했다.

"검찰개혁의 본질은 국민들이 검찰을 향해 가지는 신뢰문제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검찰=권력'이라는 인식을 깨뜨리고 검사가 그야말로 공익의 대표로서 국민을 위한 법치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검찰의 변화는 그동안 많은 국민들이 가져온 '우리 검찰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는 통념을 깨는 데서 출발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는 통념 깨야"

그는 최근 단행된 검찰 간부인사에 대해서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 시절 검찰 인사가 청와대 등 집권세력이나 그 보좌진들의 관여로 왜곡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되므로 이를 바로잡을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다만, 선의의 개혁의지가 또 다른 친분인사, 측근인사 우대라는 우려가 없도록 명민하고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장으로 퇴직하고도 변호사보다 학계를 택한 그에게 전관예우의 해법도 물어봤다. "'전관예우'는 그것이 지니는 폐단이나 결과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조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품성이나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제도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타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결국 법조인의 윤리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제도를 통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차등을 두는 것보다는 법조인의 자부심과 긍지, 윤리로서 스스로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전관예우는 결과의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의 문제

그는 법조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매사 초조해 하지 말고, 외견상의 불운조차도 자신의 진정한 개발과 자유를 위한 기회로 생각하는 긍정적 태도가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법조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마음입니다. 일희일비하면 일도 못할 뿐 아니라 개인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법조 주변의 상황이나 개인적인 상황의 어려움 같은 것도 결국에는 사회정의와 법치주의를 위해 이 직업을 택한 이상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소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작은 보람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조금씩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꾸준히 자기를 담금질하고 단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에서 대학 교수로, 대학 총장에서 장관으로. 실무계와 학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사실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동안 '검찰과 권력'을 주제로 한 체계적인 책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법무·검찰과 대학, 그리고 반부패정책기구에 몸담았을 때의 애환과 경험을 담백하게 회고해 정리하는 작업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광이불요(光而不耀)'라는 말이 있습니다. 빛이 있어도 스스로 빛나게 하지는 말라. 이것이 제가 꿈꾸는 선비정신입니다." 

박미영 기자 mypark@lawtimes.co.kr
법조인명록 등록·수정승소판결문 등록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