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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변호사의 품격' 김외숙 법제처장
출처 | 법률신문      등록일 | 2017.08.07

"변호사 되고자 했던 처음 마음으로 차별·불합리 개선 노력"

지난 6월 새 정부의 입법을 총괄·지원하는 법제처 수장에 취임한 김외숙(50·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는 1992년 새내기 변호사 시절부터 25년간 문재인(64·12기) 대통령과 함께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여성이 법제처장에 오른 것은 노무현정부 때 임명된 김선욱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에 이어 헌정 사상 두번째다. 김 처장은 취임 후 두 달 간 노동·인권변호사로서의 경험과 여성으로서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차별과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정의롭고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처음의 그 마음가짐대로 법제처장으로서 일해 나가겠다"는 그를 지난달 24일 세종시 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외숙(50·사법연수원 21기) 법제처장은 경북 경주(옛 월성군)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때문에 김 처장은 외가에서, 남동생 둘은 부모님이 계신 포항에서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다. 김 처장이 초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포항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모여 살게 됐다. 포항은 포스코(옛 포항종합제철)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시다. 당시 포항 인구의 대부분이 포스코나 협력업체 직원이거나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특히 포스코 직원들의 '황토색 회사복'은 포항에서는 부러움의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이던 김 처장 아버지의 꿈도 포스코 정직원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공장 노동자들의 삶과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주변에 법대 출신은 한 명도 없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꽤 하다보니 법대에 가라는 권유를 많이 들었어요. 은연중에 저도 모르게 '법대에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는 공장 노동자들의 어려움과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1985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노동자 권익 대변"
막연한 꿈을 꾸며 법대 진학

대학시절 주위 학우들은 학생운동 아니면 고시 공부에 매진했다. 어려운 형편을 딛고 대학에 들어간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본인의 안위는 생각치 않고 시위 현장으로 가는 것을 보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일종의 '부채의식'이었다. 그러면서도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고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공장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변호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공부에 몰두해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 처장은 사법연수원 1년차 때부터 노동법학회 활동과 함께 무료 법률상담에 열성적으로 나서며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법연수생들이 대부분 판·검사직을 동경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주위에서는 "변호사는 판·검사 퇴직 이후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말렸다. 사법연수원 교수들도 "왜 결론을 미리 내놓고 연수원 생활을 하느냐"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

연수원 1년차 때부터
노동법학회 등서 적극 활동

80년대 후반 민주화 열기가 이어지며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해졌다. 서울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측이 노조활동을 피해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열성 노조원들을 정리해버리는 '위장폐업'도 많았다. "사법연수원 시절 상담을 맡았던 사건 중 하나가 구로공단에서 다른 곳으로 회사를 이전해 이름을 바꾼 뒤 이전 회사와 다른 회사라고 주장하는 사건이었어요. 직원 중 90%를 그대로 데려가면서도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10%는 떨구고 간 거죠.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비슷한 또래의 여공들이 법정에 나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 서류를 직접 손으로 써가며 도왔습니다. 법인 간의 동일성이 인정되니 위장폐업으로 인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어요. 결국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포항에 내려가 단독으로 개업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대신 선배 변호사들과 같이 일하기 위해 유명한 노동 전문 변호사들을 찾았다. 당시 서울에서는 박원순(61·12기) 변호사가 유명했고, 성남에서는 이재명(53·18기) 변호사, 부천에서는 이양원(58·14기) 변호사 등이 이름을 떨쳤다. 부산·영남권에는 '문재인(64·12기) 변호사'가 있었다. "같은 생각을 나눴던 친구들은 모두 서울 출신이라 서울에서 개업하겠다고 했지만, 저는 지방 출신이니 지방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뜬금없이 내려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많았죠."

연고없는 부산에서 개업…
文변호사와 그렇게 인연

부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가본 것이 전부였지만, '변호사 문재인'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문 변호사가 몸 담고 있던 우리합동법률사무소(법무법인 부산의 전신)에 들어간 이후 법제처장으로 임명되기까지 25년간 '부산'에서 오롯이 일해왔다.

우리법률사무소는 굉장히 자율적인 분위기였다. 구성원도 문 변호사와 고(故) 노무현(7기)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57·16기) 변호사, 김 처장 등 단 3명이 전부였다. 정 변호사는 처음 들어온 그에게 "알아서 해보라"며 사건들을 내줬다. 김 처장은 변호사 첫 해인 1992년 수임한 사건에서 100% 패소했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100% 승소했다. "패소한 사건들은 사실 어떻게 해도 이기기 어려운 사건이었는데, 마음껏 해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 사건들을 통해 변호사로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는 1993년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대기업의 부당해고 사건을 꼽았다. 사측의 압력이나 개별적인 회유로 2만여명에 달하던 노조원이 순식간에 줄어 20여명만 남게 됐는데, 사측에서는 남은 노조원의 개인적인 징계 사유를 찾아내 노조 활동을 막았다. 남은 노조원 중 컨베이어 벨트 위로 제품이 지나갈 때 제품 하자를 검사하는 일을 맡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사측은 그가 깜빡 조는 바람에 제품 하자를 발견하지 못해 클레임이 걸려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해고했다. 사측은 그가 고개를 숙이고 조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징계사유로 삼았다. "반대신문에서 사진을 찍은 직원에게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사람이 졸면 깨우는게 먼저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도 못하더군요." 김 처장은 노조가 징계절차에 참여해 참고인으로 진술할 수 있는 권한을 무시하고 징계를 내린 것도 문제삼았다. 결국 법원은 "사측이 해당 노조원의 노조활동을 막기 위해 해고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형사사건 피고인이 준
스타킹 3개는 지금도 '보물'

그는 변호사 시절 형사사건 피고인을 변호한 뒤 선물로 받은 '스타킹 3개'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별 통보에 분노한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여자를 데려간 뒤 문을 잠그고 칼로 위협하며 밤새도록 때렸는데, 만신창이가 된 여자가 죽기살기로 칼을 뺏고 남자를 찌른 사건이었다. 피투성이에 팬티 바람으로 겨우 탈출한 여성은 그 길로 동네 파출소로 뛰어가 "사람을 찔렀다"며 자수했고, 구급차와 순찰차가 출동했다. 순찰차에 탄 여성은 '남자가 자신을 보면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뒷좌석에 숨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결국 이 여성은 살인죄로 구속기소됐다.

김 처장은 여성단체의 의뢰로 영장심사 단계부터 변호를 맡았다. "피의자인 여성이 너무 많이 맞아 한두달 입원해 몸을 추스른 뒤에야 구속돼 재판을 받았는데, 다행히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고 형이 확정됐습니다. 그 분도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폭행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남자를 죽일 의도가 아니었다는 부분이 인정된 것 같아요." 그는 "피고인이 형편이 어려웠는데 선물을 보내왔더라"며 "지금까지 받은 어떤 선물보다 감사하고, 아까워 포장도 뜯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때 정계입문 권유도 받았지만
변호사로 묵묵히

김 처장이 변호사로 개업한 1992년, 전국에 여성변호사는 그를 포함해 21명에 불과했다. 19명은 서울에 있었고, 김 처장을 포함해 나머지 2명은 부산에 있었다. 부산에서는 '2호 여성변호사'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노동사건 이외의 분야에도 참여해 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지 않았던 시절, 여성단체의 요청으로 지역에서 성폭력·가정폭력 문제의 공론화 작업이나 형사·가사사건에서 여성 피해자를 돕는 일도 하게 됐다. 전국적으로도 여성 변호사가 적다보니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심판이나 규제개혁, 공무원소청심사 등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했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심판 담당 공익위원도 90년대 중후반부터 계속 해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을 지낸 김 처장은 다양한 공익활동 경력에 대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다시 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여성에게 할당된 위원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만 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여성 변호사들에게 "할당제로 인해 여성 변호사들을 많이 찾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라며 "여성 변호사들의 역량을 보여 줌으로써 '사회가 우리를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만들겠다'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처장은 2008년 이용훈(75·고시 15회)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의 진상을 규명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도 참여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공익활동은 정부 성향에 관계없이 계속 해왔습니다. 특히 과거사정리위원 활동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더 잘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김 처장은 그동안 주변을 통해 정계 입문 권유도 받았지만, 계속 변호사로서만 묵묵히 살아왔다. 문 대통령도 청와대 인사팀으로부터 김 처장을 추천받았을 때 정말 본인 의사를 확인했는지부터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번에 청와대로부터 연락받았을 때도 첫 대답은 '대통령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는 것이 누가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면서 "변호사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법제처 일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지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라 발탁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대통령께 누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고,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법제처장에 취임한 뒤 업무를 파악하면서 "변호사로서 외부에서 볼 수 있었던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불과 2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부처가 소수정예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입장에서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낡고 불합리한 법령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법제처의 입법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법제도가 신속히 정립돼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민 입장에서 법령해석…
국정과제 이행에 최선

정부는 지난달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와 함께 "100대 국정과제 중 91개 과제의 이행을 위해 법률 465건과 대통령령을 포함한 하위법령 182건 등 모두 647건에 달하는 법령의 제·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법률은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돼야 할 법안만 117건이다. 올해 정부입법계획은 지난 1월 이미 국회에 제출됐지만, 법제처는 국정과제 관련 내용을 반영한 수정안을 8월 중 국회에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김 처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갈등, 도농 문제, 중앙·지방간 문제 등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것이 새 정부가 내걸고 있는 국정과제 목표 중 하나"라며 "법제처도 하위 법령 중 미처 깨닫지 못해 불합리한 점을 그대로 방치한 부분이 있다면 선도적으로 발굴해 소관 부처와 협업해 시정해나가는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자치제도에 저해되는 법령에 대한 정비 작업에도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의원입법의 경우에도 법제처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법제처는 정부입법지원센터 시스템에 의원입법안이 등록되면 소관부처에 이를 알린 뒤 관계부처와 협의해 통일된 의견을 마련하도록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예산도 뒷받침돼야 하고, 집행하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며 "의원입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전절차로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처장은 성경 중 '학대 받은 자로 부끄러이 돌아가게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시편 74편 21절)'라는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든 '학대받은 사람이 와서 도움을 요청할 때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는 말은 변호사가 해야 할 일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이 어려움과 차별에서 벗어나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됐다는 뜻이 아닐까요. 법제처장을 하면서도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승윤 기자 leesy@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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