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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후배 법관들의 ‘큰 형님’… 이상훈 前 대법관
출처 법률신문      등록일 2017.03.06

"재판은 정의와 평화라는 두 가지의 가치 추구해야"

"재판에서 헌법과 법률의 대원칙들이 구호나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입버릇처럼 되뇌면서도 정작 사건에 임해서는 유죄추정이 원칙인 것처럼 재판해서는 안됩니다. 조세법률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실질과세원칙을 들이밀어 형해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사법의 핵심 임무는 각종 권력에 대한 적정한 사법적 통제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고 법관은 이 임무를 어떻게 하면 성실하게 다할 수 있을 것인지를 끝없이 고찰해야 합니다." 지난달 27일 그의 퇴임사는 강렬했다. 33년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후배들에게 '법과 원칙'에 따른 소신 재판을 주문했다. 이상훈(61·사법연수원 10기) 대법관 이야기다. 이 대법관은 '소신파',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넉넉한 성품으로 후배 법관을 잘 챙기는 '큰 형님'으로 불린다. 이 대법관은 인터뷰 동안 날카로운 눈빛으로 거침없이 대답하면서도 중간중간 농담을 건네는 '소탈한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다. 퇴임을 앞둔 지난달 22일 이 대법관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열심히 할 필요 없습니다. 잘하면 됩니다." 이상훈(61·사법연수원 10기) 대법관의 전속 재판연구관들이 부임 후 이 대법관에게 인사를 하러 가면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다. 재판연구관들은 "잘해 봅시다" 또는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일반적인 덕담을 예상했다가 꽤나 당황했다고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 대법관의 가치관이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대법관은 재판연구관들에게 "야근할 필요 없다. 잘하면 된다"는 '잔소리'를 자주 하기로 유명한데, 그만큼 본인 스스로도 '완벽주의'를 추구할 정도로 매사에 철저하다. 전속 연구관이었던 한 부장판사는 "이 대법관은 당사자가 제출한 수백쪽짜리 탄원서를 모두 읽고 그 요지를 보고하라고 할 정도로 사소한 것까지도 꼼꼼하게 검토했다. 스스로도 당사자가 손으로 쓴 상고이유서까지 모두 읽었다"며 "한 사건 한 사건에 혼을 불어넣고 법리뿐만 아니라 구체적 타탕성까지 모두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3년 인천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제주·인천지법원장을 거쳐 법원행정처 차장을 역임하는 등 재판 업무는 물론 사법행정의 주요 요직을 두루 섭렵한 엘리트다. 그러나 학창 시절은 의외였다. 고등학교 땐 정학을 맞아 교내 각종 수상에도 제외됐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공부는 잘했지만 모범생은 아니었다'라고 했다.

고교 때 공부 잘했지만
정학처분 받은 전력도

이 대법관은 법조인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동생은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특별검사로 활약한 이광범(58·13)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다. 이 대표 역시 법원행정처 건설국장·송무국장, 인사실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사법정책실장 등의 요직을 거쳤다. 사법연수원 13기 중 대법관 후보 선두주자라는 평가도 받아 형인 이 대법관과 묘한 경쟁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 대법관의 대법관 발탁을 앞두고 2011년 2월 법원을 떠났다. 이 대표는 2014년 11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형제가 같이 판사를 하는 순간, 기회가 우리 두 명에게 같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숙명이 돼 버린 것이지요"라는 말을 했었다. 이 대법관의 아들, 며느리, 조카들도 법조인이다.

형제가 판사로…
아들·며느리·조카도 법조인

그는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소신 판결을 많이 내린 것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보수색이 짙어진 대법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 대법관은 통상임금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89399)에서 근로자의 편에 선 소수의견을 냈다. 근로자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해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다수의견을 반박하면서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 거듭 살펴보아도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해 화제가 됐다. "화제의 대상이 되는 건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만, 아직도 제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의견이 아니라도 이를 판결문에 밝힐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물론 다수의견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소수의견이 다수가 될 일도 있겠죠."

"정의만을 추구하다
평화를 잃어버리면 곤란"

이 대법관은 또 2012년 4월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유죄 판결 때 "정부 정책 등에 비판 의사를 표시하며 개선을 요구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2015년 1월 내란음모·내란 선동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이 선고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는 내란 선동 혐의에 무죄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의 선동은 국지적 파괴 행위일 뿐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같은 해 8월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는 '객관적 증거가 있다고 보이는 3억원 외에 나머지 액수까지 모두 유죄로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법정에서 한 진술이 반대일 경우 객관적 자료가 없다면 법정 진술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보수색 짙은 대법원에서
진보 성향 목소리 내

이 대법관은 "대법원은 균형 있는 판결을 지향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나의 '다른 목소리'가 일종의 평형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검찰주사가 검사의 지시에 따라 검사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외형상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돼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무죄를 선고해 검찰의 그릇된 수사관행에 제동을 걸고 엄격한 적법절차의 보장을 선언하기도 했다.

원칙에 충실한 판결을 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가 추구한 가치는 '평화로운 정의'다. "재판은 정의와 평화라는 두가지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정의만 추구해서 평화를 잃어버리면 곤란합니다. 결국은 평화로운 정의를 추구해야겠죠. 저는 여기에 중점을 두고 판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소수의견이 언젠가
다수가 될 일도 있을 것"

이 대법관은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 중 하나로 '임의 비급여 진료도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2010두27639·27646 병합)을 꼽았다. 임의 비급여란 의사의 판단 아래 국민건강보험법상 의료수가 기준을 넘어서는 진료를 하고 환자에게 비용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의 주심이던 그는 임의 비급여 진료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진료행위의 시급성이 인정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논리을 이끌어 임의 비급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 변경에 앞장섰다. 그는 판결문에서 "진료행위 당시 시행되는 관계 법령상 국민건강보험 틀 내의 요양급여대상으로 편입시키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진료행위의 시급성이 인정되는 등 임의 비급여를 회피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있고, 진료행위가 의학적 안정성과 유효성 뿐 아니라 요양급여 인정기준 등을 벗어나 진료해야할 의학적 필요성을 갖췄고 가입자 등에게 미리 그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해 본인 부담으로 진료받는데 대해 동의를 받았다면 이 경우까지 국민건강보험법상 금지되는 부당진료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며 "요양기관이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지급받더라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측인 요양기관이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여파로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채 법원을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후임 대법관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 않아요. 후임이 누군지 모르고 퇴임하는 유일한 대법관이 접니다. 후임 재판관 추천위원회에도 제가 못 들어가죠. 제가 농담으로 다음에라도 저를 위원회에 넣으라고 했어요(웃음). 하루 빨리 이런 상황이 끝나기를 고대합니다."

탄핵심판 여파 후임 결정 못보고
떠나 편치 않아

그는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일단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일하며 후배 양성과 사법제도 발전을 위한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는 법조계 일각의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포기 요구'에는 공감할 수 없다며 지나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직 대법관으로서 질책 받는 그런 변호사를 안 하면 되는거죠. 변호사를 잘하라고 해야죠."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재판 잘하십시오"라는 한 마디만 했다. 다른 말이 더 없느냐고 묻자 그는 "재판 잘하라는 것 말고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웃었다. "본인이 만족하는 재판을 하세요.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본인이 압니다. 상급심 올라가서 배척되거나 비난 받더라도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합니다. 재판 잘하세요."

신지민 기자 shinji@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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