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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서비스 넘어 ‘관계 비즈니스’ 주력하는 로펌들

법률신문 /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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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세미나 등
고객 맞춤형 서비스
고객 관계 돈독히 하며
클라이언트 공략 나서

로펌들의 주 업무는 법률서비스 제공이다. 하지만 거기에 멈춰서는 뒤처지기 십상이다. 주 업무에 더해 ‘고객의 심기 경호’도 해야 한다. 최근 한국 로펌들이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관리하는 ‘관계 비즈니스’에 주력하는 배경이다. 수사와 재판 지연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심리적 안정의 필요성이 커진데다가 로펌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상시적 고객 관리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고객의 감성을 건드리고 신임 얻어야”
다른 로펌보다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무기로 고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클라이언트 공략에 나선 사례가 있다. 법무법인 가온(대표변호사 강남규)은 지난달 4일 박현정 전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을 영입했다. 그는 가업승계를 고민하는 고령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신뢰를 쌓고 상속·신탁에 관한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하는데 전문성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업무는 로펌이 상속 분쟁 혹은 신탁 관련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배정식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상속·신탁 분야의 고객은 자기가 신임하는 소수에게만 속마음을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고객의 감성을 건드리고 신임을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이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중대재해·ESG 등 주요 분야에 대한 무료 세미나를 열어 고객을 관리하는 일은 흔하다. 이제 로펌은 여기 그치지 않고 개별 클라이언트만을 위한 프라이빗 세미나, 프레젠테이션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사건을 맡기지 않았지만 언제든 로펌을 찾을 수 있는 잠재 고객을 관리하는 차원이다.
김·장 법률사무소(대표변호사 정계성)는 일부 주요 클라이언트의 관심 사항에 대해 맞춤형 프레젠테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법무법인 태평양(대표변호사 이준기)은 소속 변호사를 개별 기업으로 보내 관심 현안에 대한 세미나를 주재토록 한다. 한 대형로펌 경영위원은 “우리 펌의 경우 소수의 VIP 고객을 위한 프라이빗 세미나가 최근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클라이언트와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로펌도 나왔다.
지난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를 설립한 정재민(47·사법연수원 32기) 대표변호사는 “성공적인 결과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고객이 힘들지 않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고객 대면, 안심시키는 업무는 AI로 대체 안 돼”
외국 로펌들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클라이언트와 관계를 쌓는 데 주력해왔다. 한국 로펌은 사건을 맡긴 의뢰인 위주로 관리하고, 세미나 등 격식있는 행사를 선호한다. 그에 반해 외국 로펌은 폭넓은 잠재 고객군을 대상으로 문화 활동·스포츠 관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한 외국변호사는 “글로벌 로펌에서 일할 때 기업별 기념일이 있었다. 해당 날짜에는 특정 기업 고객만을 초청해 함께 어울렸다”며 “평소 고객과 볼링, 야구 등 운동을 함께 하거나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로펌들이 관계 비즈니스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한국 로펌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법률뿐 아니라 종합적인 차원의 토탈 케어를 제공하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또 수사·재판이 지연되며 이전보다 긴 시간 고객을 상대하게 된 것도 원인이다. 의뢰인에게 수시로 업무 상황을 보고하고 걱정을 덜어주는 업무가 긴요해졌다.
AI의 발달로 이 같은 경향이 점차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인공지능이 발달하며 자동화되는 법률 업무가 많아졌지만 고객을 대면해 안심시키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며 “변호사가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