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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15년, 길을 묻다] ⑦ "변시합격이 선택과목의 '선택' 기준됐다" - 서보국 충남대 로스쿨 원장

법률신문 /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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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분야 강의 수강생
초기에 비해 절반 이하로
교수퇴임 후 신규채용 안해

서보국 충남대 로스쿨 원장 <사진=백성현 기자>

국제거래법, 국제법, 환경법. 변호사시험 선택과목 중 수험생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일명 ‘빅3’ 과목이다. 선택과목은 로스쿨 특성화와 법조인 전문성을 내세우며 도입됐지만 이들 세 과목을 제외한 경제법, 노동법, 지식재산권법, 조세법 등을 선택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수험생들이 전문성보다는 부담이 적고 표준점수에서 불리하지 않은 과목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교육을 통한 전문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에도 반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강생이 없어 선택과목이 폐강되고 교수 채용이 중단되는 등 학문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보국 충남대 로스쿨 원장은 최근 법률신문과 만나 “선택과목을 최소한의 부담으로 해결하려는 수험생의 경향이 계속되고 있고 현재로선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5년 뒤에는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을 출제할 로스쿨 전임교수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서 원장은 일차적으로 선택과목 등의 수강을 로스쿨 졸업 기준으로 의무화하는 대신 절대평가로 평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나아가 그는 변호사시험 객관식 시험을 1학년 유급 시험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A.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제도는 로스쿨 출범 취지와 부합하지 않은 채 임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미 로스쿨 입시에서 학교별 특성화를 자기소개서에 반영하는 것이 로스쿨 입학에 영향력이 없다는 점을 학교 측이나 응시자 측 모두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택과목이 가지는 전문화, 특성화의 의미는 사라진 채 오로지 변호사시험 합격에 유리한지가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돼버렸다.
Q. 특정 과목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A. 먼저 민사법, 형사법, 공법 등 변호사시험 필수과목 부담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선택과목은 최소한의 부담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 노무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자격사들이나 관련 수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그 외 학생들은 전문자격사 시험과 겹치는 과목을 기피하고 있다. 이미 경험이 있는 수험생들이 있는 한 신규 진입한 학생들은 표준 점수상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러한 과목의 선택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현재 제도로선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Q. 이대로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나
A. 현재 전국에 선택과목당 20~30명 정도의 로스쿨 교수들이 있지만 더 이상 출제를 하지 않거나 연구년 등으로 국내에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10명 정도만 출제할 수 있다. 그마저도 개인 사정 등으로 사양하는 경우가 많아서 출제위원 위촉에 어려움이 있다. 몇 년 안에 정년을 맞이하는 선택과목 전임교수가 많은데 지금과 같은 현상이 심화하면 앞으로 선택과목 강의와 출제를 담당할 교수를 찾기 더 어려울 것이다.
또 대부분 로스쿨에서 전문 분야와 기초법 강의 수강생이 초기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 이건 이른바 빅3 과목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선택과목 교수가 퇴임해도 해당 과목 교수를 신규 채용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속히 개선하지 않으면 로스쿨에서 더 이상 선택과목 강의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은 단기 특강이나 학원 교재만으로 준비하고 시험 문제도 더 이상 로스쿨 교수가 출제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로스쿨 출범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Q. 본질적으로 변호사시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A.
근본적으로 전문적 법률 분야에 관한 과목의 고사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기본 과목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선택과목을 수강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변호사시험에서 민사법, 형사법, 공법의 부담이 커졌다. 이러한 부담은 합격률이 낮다는 문제와는 별개로 5일 동안 민사법, 형사법, 공법 과목에 대해 선택형, 사례형, 기록형을 모두 한 번에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객관식 시험은 본시험과 분리해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하는 전국 규모의 유급 시험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의 자질에 관한 기본적인 평가는 사례형과 기록형으로도 충분하다. 현재의 객관식 시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줄여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해 1학년에서 배우는 내용, 즉 헌법(헌법사 제외), 민법(가족법 제외), 형법으로 범위를 축소해 유급 시험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다. 유급 비율은 학교별 1학년 재학생 대비 5~10% 정도가 될 것이며 2000명 중 100~200명 정도로 예상한다. 유급 시험을 통과해 본시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2학년부터는 전문적 법률 과목에 관한 관심을 가질 여유도 생길 것이다.
Q. 시험 제도 자체를 변경하면 예산, 인력이 먼저 해결돼야 할 텐데
A
. 법무부가 주관하는 현행 변호사시험의 출제와 채점, 관리 어느 것도 변경할 필요가 없다. 추가적인 예산도 필요하지 않다. 선택형 시험 출제위원은 기존과 동일하게 합숙 출제하면 되고 변호사시험 1일 차부터는 3학년 등 본시험 수험생이 사례형, 기록형 CBT 시험을 치르고, 마지막 날에 전국의 1학년 재학생 약 2000명이 각 학교 시험장에서 선택형 시험을 보면 된다.
Q. 선택과목 외에 더 기대하는 효과는
A.
객관식 시험을 유급 시험으로 변경하면 계속 문제 된 오탈자(변호사시험 5번 탈락) 양산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법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 로스쿨 학생은 8년의 기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러나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학년 유급 시험을 도입한다면 입학 후 2~3년 안에 진로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안재명 기자